9월 18일 일요일.
한달 전쯤 예약해 놓은 루르드행 TGV를 타기 위해 몽파르나스역으로..
프랑스 철도청 SNCF 사이트에서 영어로 예약을 하다하다 안돼서 불어를 영어 번역기로 돌려가며 어렵게 예약함.. -.-
몽파르나스 역. 왜 역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꾸질한건지.. 실내에 비둘기 천지다... -.-
지저분한 역내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시간 맞춰 기차를 타러 플랫폼으로 가는데 폴 이 눈에 띈다.
잘 됐구나.. 하고 달려가 커피랑 이것저것을 사서 루르드행 기차를 찾았다. 거의 시간 딱 맟춰서..
14:40분 몽파르나스 출발 20:14분 루르드 도착 TGV 1등석.
늑장부리다 59유로에 예약했는데 그나마도 다행이었다. 더 늦었음 더 비쌌을테니까..
우리가 타야할 12호 칸은 끝쪽인지 보이지도 않고 곧 기차가 출발할 것 같아서..
10kg 배낭을 메고 최~대한.. 있는 힘껏 기차 끝쪽으로 달려 가다가 출발 바로 직전에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 올라서도 우리 좌석 칸으로 가기 위해 계속 뒷쪽으로 걸어 갔다.
그 런 데 웬 걸..
기차는 출발했고 마지막 칸까지 왔는데 우리 자리가 있는 12호 칸은 없네...
ㅠㅠ ㅠㅠ
분명 열차 번호를 확인하고 탔는데 급히 오느라 잘 못 본건가??
ㅠㅠ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기차는 루드드행이 아니고 보르도행이다... 아~ 머리속이 하얘지는 느낌 ㅠ.ㅠ
먹거리 사느라 이런 큰 실수를 저지르다니.. 그게 뭐라고..ㅠㅠ 먹는데 혹 해서리... -.-
이를 어쩐다.. 보르도 가서 하루 자고 내일 루르드로 가야하나??
안절부절 하다가 승무원 아저씨한테 표를 보여주고 실수로 잘못 탔다고 심각하게 얘기 했더니 아주 담담하게
걱정 없다는 투로 다음역에서 갈아타란다.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키면서...
뭐니.. 여행 초반부터... ㅠㅠ 암튼 다음역에서 갈아타라는거지..
--> 산티아고까지 도보 순례을 위한 배낭.
저 짐들을 들고, 메고 전속력으로.. 허벌나게 달렸드랬다..ㅠ
이 칸은 지정 좌석제도 아닌데 어리버리 경황 없는 틈에 바로 앞에 좋은 자리도 뺏기고 역방향의 자리에 앉아서 가게 된다.
...
...
아.. 몰라. 갈데까지 가보는거지뭐...
--> 허망한 마음으로 바라본 시골 풍경.
다음 역에서 내리자 마자 또 철도 직원인 듯한 사람에게 차표를 보여 주고 어디에서 타야하는지 물어 본다.
근데 이 아저씨도 손으로 우리가 타고 온 기차 뒤를 가리키신다..
아~ 이제서야 사태 파악!! 난 왜 이러냐.. ㅠㅠ 우리나라 기차보다 유럽 기차를 더 많이 타봤으면서.. -.-
유럽에서는 기차가 앞,뒤칸이 행선지가 다를 수 있는데 우린 그 앞칸에 타고 있었던 거다.
연결 통로가 막힌 바람에 완전 식겁한거지..ㅋㅋㅋ 휴~~ 어쨌든 다행이다.
이제야 제 자리로... ㅎㅎㅎㅎㅎ 1등석의 위엄..
--> 참.. 이거 먹자고 그 쇼를 했다.. ㅎㅎ
앞에 할머니가 식사하러 가신 틈에 우리도 이렇게 차려 놓고 먹는다. 같이 먹자고 해야하나 고민 했었드랬는데.. :)
--> 루르드는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소도시로 14살의 가난한 소녀 벨라뎃다 수비루에게
150년 전인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차례에 걸쳐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곳이다.
이번 여행의 첫번째 목적은 산티아고까지 도보 순례이지만 나름 신앙인으로..
또 산티아고까지 가는 프랑스길 첫 지점인 생장피에드포트와 루르드가 가까워서 여행 코스에 집어 넣었다.
미약한 신앙심으로 감히 성지순례라 하기도 부끄러워 여행이라고 칭한다.
어쨌든 설레임과 불안함을 안고 루르드 도착.
비 가 내 린 다... 춥 고..
처음 준비하면서 루르드 숙소를 알아보니 추천숙소 정보가 많지 않았다.
보통 배낭여행 코스면 정보들이 많을텐데 루르드는 거의 단체로 성지순례 오는 곳이라
기껏해야 숙소가 많으니까 예약 안해도 아무데나 가면 된다.. 정도??
그래서 그냥 왔는데.. -.- 이거원.. 기차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왼쪽으로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주변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고.. 인포메이션 센터도 안보이고.. 해는 저물어 가고.. 비도 오고.. 춥 기 까 지... ㅠ
인터넷에서 얼핏 본 바로는 기차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라고 한것 같아서 일단 오른쪽으로 걸었다.
정말 죄~다 호텔이었고..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호텔이 많다네.. 걷다보니 어떻게 성지 주변까지 오게 됐다.
성지 입구 쪽에서 가까운.. 그나마 좀 사람들 왕래가 있어 보이는 호텔로 갔다.
성지 입구를 바라보면서 오른쪽에 있는 호텔. 호텔이 꼭 오래된 병원 건물 같다.
수녀님이 호텔 카운터에 계신걸 봐서는 개인 호텔은 아닌가 보다.
아침은 4유로 숙박은 1박에 42유로... 성수기가 아니어선지 가격이 훌륭하다. ㅎㅎ
온통 흰색에 옛날 병원 같은 긴 복도를 걷다보면 좀 무섭기도 했다. 사람들도 전~부 할머니 할아버지에..
아마 투숙객중 우리가 최연소자였으리라.. 흠ㅎㅎㅎㅎㅎ -.-
-->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내려다본 풍경.. 빗줄기가 제법 굵다.
--> 지난밤 호텔에 짐을 풀어 놓고 바로 야간 묵주기도 행렬에 참여 했다.
빗속에서 진행된지라 더욱 경건한 느낌이 들었고.. 아쉽게도 카메라를 두고 가서 사진은 못 찍었다.
위에 사진은 성지에 바로 들어선 모습.
규모가 큰 성당처럼 보이지만 독립된 3개의 성당 건물로..
로사리오 대성당, 동굴 성당,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 순으로 위치해 있다.
--> 로사리오 대성당. 오른쪽으로 가면 성모 발현 동굴과 침수장소가 나온다.
-->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눈과 귀를 씻는다. 세속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정화의식이라고나...
--> 침수장소
침수는 오전 9~11시, 오후 2시30분~4시 두차례 있다.
침수를 기다리는 행렬이 길든 짧든 시간이 되면 문을 닫고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순례자들은 묵주기도를 바친다.
침수는 남녀 따로 이뤄지고 장애인 우선으로 진행된다. 봉사자 안내로 대기실에 들어서면 속옷 외 옷을 모두 벗으라고 한다.
순서가 되면 안내에 따라 침수실로 들어가 가운으로 갈아입고 물 안에 들어가면 봉사자가 "정면에 있는 성모상을 보고 기도하라"고 한다.
기도를 마친 후 성호를 그으면 봉사자들이 양편에서 몸을 뒤로 눕혀 침수시킨다.
물에서 나온 후 수건으로 몸을 닦지 않고 옷을 입고 그대로 말린다. 신기하게도 금방 마른다. - 평화 신문에서..
9월 중순임에도 파리에서 무지 추웠는데 루르드는 산골이라선지 더더욱 추웠다. 게다가 비까지..
1시간 일찍 왔는데도 줄이 꽤나 길었는데 그나마 오늘 비가 와서 평소보다는 훨씬 덜 기다리는듯 하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다가 오고.. 긴 장 된 다. 말도 안 통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ㅠㅠ
어쨌든 들어가서 봉사자 안내에 따라 눈치껏 했다 -.-
대리석 바닥이 욕조 모양으로 패여져서 정면에 성모님 상이 있고 좌,우로 봉사자가 서있다.
양쪽에서 봉사자님이 팔을 잡고 물속으로 이끌어서 앉혔다가 뒤로 뉘여 온몸이 물에 잠길 수 있게 하셨다.
가만 있어도 추운데 찬물에 들어가니 턱이 저절로 덜덜 떨렸다.
모래부터 강행군을 해야하는데 이거 몸살 나는거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자료에 의하면 정면에 있는 성모님상을 보고 기도하라고 했지만.. 이 당시에는 아무 기억도 안났고..
그냥 눈치상 기도 해야할 것 같아서 기도를 하고 성모님께 친구했다.
봉사자님들이 거의 60대쯤 되셔선지.. 옷을 입고 벗는걸 일일이 다 챙겨주셨다. -.- 굳 이.. 부끄...
그리고 워낙에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오고 노약자들이 많아서.. 말로 설명을 하시기보다 몸으로 직접 이끌어 주신다.
걱정과 달리 침수의식을 마치고 나니 오히려 몸이 따뜻해져 온다. 성수여서인지 아님 냉수마찰 효과인지는 모르겠다..
--> 벨라뎃다 성녀 동상
성모 마리아는 150년 전인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이 동굴에서 땔감을 주우러 온
14살의 가난한 소녀 마리아 벨라뎃다 수비루 (성인, 1844~1879년)에게 18차례 발현했다.
특히 성모 마리아는 2월 18일 세 번째로 발현해 벨라뎃다에게 보름간 계속 동굴에 와 줄 것을 부탁하고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프랑스 교회는 이 날을 특별히 기념해 벨라뎃다 성녀 축일을 선종일인 4월 16일이 아닌 2월 18일로 지내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벨라뎃다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
"죄인의 회개를 위한 상징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입맞춰라"
"당신이 가르킨 곳에 샘을 파 그 샘물을 마시고 씻도록 하고, 이 곳에 성당을 지어라"
"나는 원죄없는 잉태이다" 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는 루르드를 찾는 모든 순례자들을 무릎 꿇어 회개하게 하고, 물로써 새로 나게 하고 있다. - 평화 신문에서..
--> 침수의식 후 잠시 호텔에 들러 쉼. 언제 비가 왔냐는듯.. 날이 화창해져 왔다.
--> 여기가 베르나데트 성녀의 생가인가 보다 하고 왔는데 그건 아니고 성녀의 친척들이 그 당시 모습들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아무래도 사설이다 보니 그럴듯하게 잘해 놓긴 했다. 가짜가 더 진짜 같다. 사진도 엄청 찍었구만.. -.-
다 둘러보고 마지막 코스에 기념품 판매점이 있어 출구로 연결 된다. 상술이지..
--> 루르드의 골목길
--> 이곳이 진짜 벨라뎃다 성녀의 생가 볼리 방앗간. 아까랑 많이 비교된다..
오른쪽은 소피아 수녀님. 성지에 대해 별로 아는게 없어서 우리나라 단체팀이라도 좀 만나길 바랬는데 보이지도 않았고..
루르드에서 유일하게 본 우리나라 사람. ㅎㅎ 불어도 너무 유창하게 잘 하시고 어제 만났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잠시 이곳에서 안내를 맞게 되셨다고 하는데.. 덕분에 이곳에서만 꼼꼼하고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몇시간 후 다시 들러 우리가 준비해간 작은 선물을 드리고 왔다.
아래는 벨라뎃다 성녀의 생가에 있던 한글 안내문. 클릭하면 크게 보임..
--> 성모 발현 동굴
--> 벨라뎃다 성녀의 가계도
>> Love Without Limit
--> 성녀 벨라뎃다 세례 성당
--> 까쇼(Cachot-감옥)에 전시된 벨라뎃다 성녀의 유품들
벨라뎃다 성녀는 가정 형편상 학교 교육은 물론 성당 교리교육도 받지 못하고 성장했는데
10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파산으로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어 이를 딱하게 여긴 마을 이장이 폐쇄된 옛 감옥을 내주어
가족이 단칸 까쇼(Cachot-감옥)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가정형편에 어머니는 부양가족을 한 명이라도 줄일 겸 또 병약한 벨라뎃다를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려고 근처 바르트레스의 한 농가 가정부로 보내나 힘든 가정부 생활을 견디지 못한 벨라뎃다는 다시 까쇼로 돌아왔고..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땔감을 구하러 마사비엘 동굴로 갔다가 벨라뎃다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보게 됐다.
--> 성 비오 10세 대성당
루르드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유명 건축 설계가들인 피에르 팽사드, 안드레 르 도네, 피에르 바고가 공동 설계해
1958년 3월 25일 봉헌된 성 비오 10세 대성당은 노출 콘크리트 양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물고기 모양으로 설계됐으며
내부엔 아무런 지주나 기둥 없이 지어진 것이 특징이고.. 2만 70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규모 면에서 거대하다.
입구는 루르드 성지 정문 아래에 있는 안내소 오른편 공중전화 부스 옆 내리막 길에 있으며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어두운 터널 길은
순례자에게 '회개와 정화'를 요구하는 듯하며.. 많은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에 사고 방지를 위해 계단도 없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난하게 죽고 싶다"고 말할 만큼 가난한 삶을 사랑했던 성 비오 10세 교황을
드러내듯 대성당 내부는 너무나 단순하다.
대성당에선 미사와 '성체강복' 예식이 거행되는데 특히 부활대축일부터 10월 셋째 주 토요일까지 순례 시즌에는
매일 오후 5시에이곳에서 성체강복 예식이 거행된다.
성체강복은 '성체행렬'로 시작되며 성모 발현지인 마사비엘 동굴이나 강 건너 성녀 베르나데트 성당에서 출발하는 성체행렬은
제일 먼저 봉사자단과 기수단, 환자들, 복사단, 사제단, 성체 순으로 이동한다.
루르드 성지에서 가장 많은 치유 기적이 일어나는 때가 영성체와 성체강복, 침수 때라고 한다.
성체강복은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 독어, 이탈리아어 등 다국적 언어로 진행된다. - 평화 신문에서..
--> 파이프 오르간과 성가대석
--> 루르드 성지는 치유의 기적이 있어서 유난히 환자인 순례객들이 많다.
--> 성 비오 10세 대성당 내부에 걸려 있는 성인 사진들 중 파티마의 성인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 우리나라 103위 순교성인
--> 반가운 한글 ^_____^
-->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상
--> 가브강 건너에서 바라본 로사리오 대성당, 동굴 성당,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
그리고 오른쪽 아래가 성모 발현 동굴이다.
--> 성모 발현 동굴
--> 가브 강 건너 산책길
--> 1963년 3월 25일에 만들어진 병자 순례단을 위한 십자가의 길
--> 가브 강
--> 촛불 봉헌대
--> 야간 묵주기도 행렬
밤 8시 30분 부터 성모발현 동굴에서 광장을 지나 로사리오 대성당 앞까지 묵주기도를 바치는 예식이 이어진다.
성당 입구에는 성가대와 각국 대표들이 나와 묵주기도를 선창하고 순례자들은 촛불을 들고 다함께 라틴말과 각국 언어로
기도 하는데 한국말은 안들린다. 단체팀이 왔더라면 했을텐데 좀 아쉽기도..
--> 로사리오 성당 지붕격인 황금색 천상모후의 관
--> 성모 발현 동굴
매년 루르드를 찾는 순례자 400여만 명은 누구할 것 없이 제일 먼저 성모 발현 동굴을 찾아간다.
성모 발현 동굴은 루르드 도심을 가로지르는 가브 강가 절벽 한 가운데에 있는데 주민들은
이곳을 마사비엘 massabielle이라 부르고 있다.
마사비엘은 루르드 성지 중에서 성모님의 따스한 품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늑한 곳으로..
이 곳은 루르드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회개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시작점이다.
성모님이 발현했던 이 곳은 목격자 성녀 베르나데트의 증언에 따라 발현한 성모님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성모상이 서 있다.
베르나데트의 목격 증언에 따르면 루르드에 발현한 성모는 "이 세상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머리에 후광이 빛나고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색 허리띠를 두르고, 두 손은 가지런히 합장을 한 채
묵주를 오른 팔에 늘어뜨리고, 맨 발 위에 노란 장미가 있었다" 고 한다. - 2008년 평화신문에서
--> SOY ERA IMMACULADA COUNCEPCIOUN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이다
--> 성모 발현 동굴
성모 발현 동굴 미사는 매 시간 있는데 고요한 가운데 미사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마지막날 새벽 6시 첫미사를 봤다.
저 동굴벽에는 물이 흐르는데 사람들이 벽을 만지면서 동굴 주위를 돌며 기도를 한다.
특히 나는 손으로 하는 일이 많아 손에 성수를 듬뿍 적셔가며 기도 했다..
- 마사비엘은 순례자들이 '기적수'라고 하는 샘물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성모 마리아는 아홉 번째 발현 날인 1858년 2월 25일에 베르나데트에게 자신이 가르킨 곳을 파서..
그 샘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씻도록 했다.
베르나데트는 샘을 파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 고백했다.
마사비엘 안으로 들어가면 성모 마리아의 지시로 베르나데트가 손으로 판 샘물의 발원지를 직접 보고 그 물을 마실 수 있다.
유리판을 덮어 잘 보존하고 있는 이 수원지에서 지금도 하루 12만2400리터의 샘물이 샘솟고 있다 - 2008년 평화신문에서
--> 샘에 가서 마시고 씻으라
--> 빛의 신비를 모자이크화로 표현해 놓은 로사리오 대성당 입구 외벽.
환희ㆍ고통ㆍ영광의 신비 모자이크화는 성당 내부에 있는데 빛의 신비만 나중에 추가되어 이렇게 입구 외벽에 있다.
--> 로사리오 대성당
많은 순례자들을 수용할 목적으로 설계된 로사리오 대성당은 신자석에 기둥이 하나도 없어 크기가 길이 52m, 너비 48m에 불과하지만
2000여 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으며 돔이 있는 신 비잔틴 양식으로 1881년 착공, 1889년에 완공된 후 1901년 10월 6일 봉헌됐다.
로사리오 대성당의 외형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물고기와 밀알 형태이고 돔 위에는 황금색 '천상 모후의 관'이 모셔져 있다.
"성모님이 항상 묵주를 들고 나타나셨다" 는 벨라뎃다의 증언을 토대로
이 성당은 묵주기도 환희ㆍ고통ㆍ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는 15개 경당으로 꾸며져 있으며
각 경당마다 묵주기도 각 신비의 주제를 나타내는 모자이크화를 장식해 놓았다.
--> 로사리오 대성당 파이프 오르간
--> 천상 모후의 관 아랫부분인 돔 형태의 천장
--> 동굴 성당
동굴 성당은 루르드에서 첫 번째로 지어진 성당으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마사비엘 동굴 바로 위에 지어졌다.
제대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기념해 발현 장소 바로 위에 설치해 성모 발현 동굴과 함께 '루르드의 심장' 으로 불리며..
성모 마리아의 소박함과 단순성을 묵상하게 하는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3개의 뾰족 아치와 28개의 대리석 기둥이 전부이며 성당 내부는 폭 10m, 높이 4.2m, 길이 25m로..
신자석도 휠체어 5대가 들어갈 공간과 120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다.
동굴 성당은 24시간 내내 성체가 현시돼 있는 순례자들을 위한 성체 조배 성당이기도 하다. - 평화 신문에서..
--> 로사리오 성당 지붕격인 황금색 천상모후의 관
--> 십자가의 길을 들어서며..
루르드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6시에 성모 발현 동굴 미사를 보고 기차시간이 많이 남아 십자가의 길을 걸어본다.
--> 십자가의 길
루르드 성지 뒤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1.5km 구간에 조성돼 있는 십자가의 길은 14처와 예수 부활을 상징하는 빈 무덤 등으로 구분돼 있으며
십자가의 길 제1처에 못미친 지점에 루르드 순례를 오던 중 열차 전복사고로 숨진 33명의 프랑스 물랭교구 신자들을 위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는데.. 못 보고 지나친건지 위에 십자가 사진이 그 추모비인지..??
--> 이 조각상들은 프랑스 조각가 라피의 작품으로 1898년~1911년 사이에 제작, 설치 됐다.
십자가의 길 기도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로마 병사 등 인물 조각상 115개로 꾸며져 다른 어떤 십자가의 길 보다 더
그리스도의 수난이 리얼하게 전해졌다.
--> 십자가의 길 끝에 마련해 놓은 예수 부활을 상징하는 빈 무덤..
사람들이 묵주며 손수건으로 마음의 표시를 해놨다.
별 생각 없이 있는데 친구가 묵주를 걸어 놓길래.. 나도 손수건으로 마음을 남겼다.
--> 십자가의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예수님의 빈무덤을 뒤로 하고..
--> 이른 아침이라 성지가 휑 하다..
--> 기차역에서 루르드 성지로 올때는 모르고 걸어 왔지만 갈땐 이렇게 꼬마 버스를 타고 간다.
** 루르드에서 한국어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예수성심수녀회 루르드 성지 순례안내소(Servante du Sacre coeur de Jesus)"가
있는데 이곳은 대구대교구 후원으로 지어져 지난 1996년부터 예수성심수녀회가 운영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다 알고 있었음에도 왠지 단체 순례객을 위한것 같아서.. 괜히 우리 2명이 가서 도움을 청하려니 좀 미안해서..
메일도 쓰다가 말았는데... ㅠㅠ 참.. 매사에 뭘 이리 망설이냐... 이게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얼마전 다른분 블로그를 보다보니 혼자 가서 수녀님들 한테 여러가지 도움을 많이 받았드라고.. 띠용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 는 버나드쇼의 묘비명이 가슴에 콱 박혀왔다.
물론 잘 다녀오긴 했지만 그래도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아서 갔고.. 좀 더 성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거지..ㅠ
무엇보다 수녀님들과의 좋은 관계를 놓친게 아쉽다. 왠지 우리랑 잘 어울렸을텐데..ㅎㅎ
이곳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은 신자 혹은 일반 단체의 요청에 따라 기차역 마중에서부터 각 순례객들의 한국어 미사 봉헌을 위한
성당 예약, 각 순례자 동행 안내와 설명, 배웅까지 총체적인 맞춤 순례 프로그램을 제공해 주신다고 한다.
--> 생 쟝 피에드포드로 가기 위해 루르드 기차역으로 들어선다.
이제 관광객 모드에서 순례자 모드로..
내일부터 산티아고를 향한 대장정이 시작 되는데..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와~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