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토요일.
어제 그 수많은 인파가 장난 아니다 했더니만..
우와~ 밤새.. 진짜 자정부터 새벽 내내 광란의 밤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그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그림이 그려졌다.
어째 그정도인데 주민들은 신고도 안하고 경찰들도 가만 있는지 이해가 안됐다.
우리나라 같으면 새벽 2시 늦어도 3시 정도까지 그렇게 놀텐데..
지치지도 않고 소리 지르고 노래 하고.. 가끔 유리 깨지는 소리도 나고.. 한마디로 화끈하다.
아침에 거리로 나와보니 갖은 쓰레기와 술병들이 광란의 밤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단 체크아웃을 하고 알베르게에 짐을 맡겨두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7시 첫차를 탈예정이었는데 7시쯤에 알베르게를 나왔다.
시간표가 옛날꺼라서 첫차 시간이 틀려주길 바랬건만 이런건 또 정확하드라고.. -.-
어쨌든 30분 늦는 바람에 3시간을 기다려야했다.. ㅠㅠ
새로 지은 터미널이라 밖에서 보기엔 괜찮은데 터미널 특유의 꾸질함은 어쩔수 없나보다.
오늘 잠시 쉬는걸로 몸이 좀 회복 됐음 좋을텐데...
친구는 체해서 어제 밤부터 상태가 안좋고.. 이른 아침이라 춥기까지 해서 컨디션이 별로다.
난 이 도시를 사랑하기로 했다. 일단 이름부터 맘에 든다.
구겐하임 미술관 빼고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었는데 도시 자체가 깔끔하고 예술적인 느낌이 난다.
그리고 오늘에야 확연히 느낀건데 강이 흐르는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의 차이.
가만보니 멋진 도시들은 다 강을 끼고 있다. 서울도 그렇고 안동도..ㅎㅎ
빌바오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네르비온 강과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조화를 이룬 도시로..
철강과 중공업이 유명한 항구도시였는데 산업의 쇠퇴와 함께 도시가 퇴락되어 가는 중에 빌바오시에서 정책적으로 미술관을
유치해서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로 변화 했다고.. 그래서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까지 낳으며 도시 재개발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어디처럼 전시행정을 위한 재개발이나 도시의 랜드마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실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재개발이 이루어져 미술관 뒤로는 산책로와 공원도 잘 조성되어 있다.
잡지에서나 봐오던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을 보는것만으로도 빌바오에.. 스페인에 온 보람을 느꼈다. ㅎㅎ
터미널에서 아래의 트램을 타고 미술관으로...
미술관도 식후경이라 했나.. 일단 미술관 야외 까페로.
주문하면서 셀카도 찍고..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며 한껏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다가온다.
낯익은 카메라를 내밀며 이거 니꺼냐고..
.....
오~~ 마이 갓~ !!! 그게 왜 거기에??
주문하고 음식만 들고 카메라를 카운터에 놓고 온거다.. ㅠㅠ
이런이런..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부터 무차스 그라시아스 를외쳤다.
어째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또 잃어 버린지도 모르고 멍 때리며 건물을 감상하고 있었으니.. --;
아...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감 사 하 다.
단 1분이라도 카메라를 잃어 버린 사실을 알았다면 난 좌절, 절망, 비탄에 휩싸여
순례고.. 여행이고 없었을텐데.. ㅠㅠ
그저 큰 충격주지 않고 정신차리며 다니라는 경고만 주신 듯 하다.
이후 난 그 어떤 상황에도 그저 카메라가 곁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 위로가 됐다.
이름하여 또 하나의 심장이라고 나의 카메라를 그렇게 불러줬다.
그리고 스타일과는 상관없이 파우치에서 긴줄을 떼서 카메라에 연결해 내 목에 걸고 다녔다.
발리가방을 정형돈이 심장을 가로 질러 메는것으로 패션을 완성 했듯이
난 목에 건 카메라를 배낭 가슴밸트에 또 한번 고정시켜 심장 위에 위치하게끔해서 나름의 패션을 완성하고
카메라에 대한 예를 지켰다.
잠시 마음을 진정 시키고 그 여자분께 뭘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하나 고민을 시작했다.
이런 결정적일때 고마운 사람들한테 전해줄려고 서울에서 사온 기념품은 알베르게에 두고 온다. 이렇다니까.. -.-
까페에서 뭐 사줄만한 것이 없었다.
글라스 와인이나 조각케익정도여서 케익을 사서 그 여자분한테 드렸다.
괜찮다는 그분께 고마움을 듬~~뿍 담아 드렸다.
이건 단순히 고마운 정도가 아니라 은인이자 수호천사급이다.
아~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다.
카운터에서 카메라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켜서 아래의 사진을 확인하고..
까페 손님들 중에 동양인은 우리 밖에 없었으니 쉽게 찾은것일까? 그랬겠지??
아~ 감사.. 또 감사..
이리하여 난 빌바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멋진 도시다. 멋진 사람들과 함께..ㅎㅎ
--> 주문하면서 찍은 문제의 사진이자 고마운 사진.. ㅋ
.
--> 건물 내부도 너무 예술이다.
미술관의 미술품보다 건축물이 더 눈이 간다.
흰색 벽에 내려앉는 그림자 마저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 이번 구겐하임 미술관에선 '리차드 세라'의 작품이 가장 와 닿았다.
처음 이 작품을 보고 좀 못마땅 했다.. 그저 돈칠만 했다고 느껴졌거든.
환경탓인지 난 디자인을 할때 가장 염두에 두는것이 실용성과 경제성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처음 보고 재료비와 설치비만 해도 엄청 날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에.. 돈칠한 디자인이라 생각한것이다.
아주 단순한 디자인으로 선 몇개 그어 놓은것을 엄청나게 크게 확대해서 만들어 놓은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상당히 새로운 느낌들이 다가 왔다.
움직임에 따라 방향에 따라 새로운 조형미와 새로운 공간미를 만들어 내는거다.
또 이 금속은 시간이 갈수록 부식되면서 색상이 변한다. 변화되고 변화를 만들어간다.
하나의 작품에서 아주 다양한 미를 찾아 낼 수 있다. 선과 여백의 미가 한껏 느껴지는...
역시.. 대 단 하 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000만 달러짜리 리차드 세라의 빌바오 프로젝트(케럴 보겔)라고 한다..
관람객들은 ‘외부에선 내부 상태가 어떨건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고’ 또 내부, 외부를 바꾼다해도 모르긴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포함된 것과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은 관람자가 과연 무엇을 예상하느냐에 따라 모순되기까지 한다”라고 리차드 세라는 말했다.
“이 작품들은 여러분들이 이들 사이로 걸어갈때에만 드러난다.”
2004년 2월 27일 뉴욕 타임즈 - 인사이드 아트 기사
--> 위 작품들의 전체적인 형태.
--> 버스 시간 때문에 급히 둘러본 아트샵에서..
아트샵만 1시간은 구경할 수 있는데 아쉽다.. ㅠㅠ 아~주 빠른 동작으로 몇가지 겨우 샀다.
--> 제프 쿤스의 Puppy, 미술관 뒷쪽에 그의 작품이 하나 더 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저 건물 오른쪽 뒤에 있는 MAMAN을 못 봤네 ㅠㅠ
여기 오는데 시간을 너무 적게 할애하고 차표를 끊어 버렸다. 결정적으로 첫차를 놓친 탓이지.. ㅠㅠ
게다가 까페에서도 너무 오래 있었고ㅠㅠ 쓰잘데 없는걸 너무 오래 봤고.. 또... 아.. 안타깝다.. ㅠㅠ
사실 몇년전 리움에서 루이즈 부르주아의 MAMAN을 보긴 했지만 그래도 구겐하임에서 보는거랑은 또 틀리지 ㅠㅠ
그다지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임에도.. 좋아하는 작품 중에 하나였는데..
버스타고 오는 내내 마망을 봤다고 세뇌를 시키기로 했다.
나는 마망을 봤다.. 나는 구겐하임에서 마망을 봤다.. 난 본것이다.. 봤다.ㅠㅠ
--> 다시 팜플로나 시내..
저렇게 거인 분장을 한 사람들이 돌아 다니며 아이들이랑 사진 찍고 장난도 치고...
--> 산 페르민 축제를 재현한 조각품.
헤밍웨이의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에도 묘사된 산 페르민 축제는 팜플로나의 수호 성인이자 초대주교인 산 페르민을
기념하는 축제로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성인의 축일 전날인 7월 6일에 시작해 14일까지 계속 된다.
아침마다 유명한 엔시에로('황소 우리') 근처에서 투우가 벌어지고 황소들이 우리에서 몰려나와 거리를 질주하면
수많은 남자와 소년들이 재빨리 몸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친다. 이걸 표현한 작품인데 정말 리얼하다..
--> 후덜덜한 인파.. 어제도 이랬는데..
아침에 맡긴 짐을 찾으러 다시 알베르게로 갔다.
오늘 묵을 만한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카운터를 기웃거리다가
혹시나하고 호스피탈레로에게 근처에 묵을 만한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이쁘고 친절한 호스피탈레로는 컴퓨터로 여기 저기 알아보더니만.. 2곳이 있는데 모두 꽉 찼다고 한다.
안타깝게 우리를 쳐다보길레.. 우린 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세곳의 알베르게가 있는데 그 중 두곳은 만원이고 여기는 자리가 남아 있으니
그냥 여기 하루 더 머물라고 한다.. 아싸~ ^_____^
그러고는 탑 시크릿이란다.. 아무렴..ㅎㅎㅎ
정말 다행이다. 최상의 결과라고나.. ^ㅇ^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에서는 몸이 아프거나하는 특별한 이유 없이는 이틀 연속으로 머물지 못하는데..
암 튼 너 무 잘 됐 고.. 이는 비밀이다.. ㅎㅎ
--> 또 한번 광란의 밤을 보낸 흔적들..
--> 청소차.. 은은한 빛과 함께 물을 뿌리며 멀리서 유유히 다가 오는데 진짜 멋지더라. ㅎㅎ
우리가 지나가니 알아서 물 뿌리는것도 멈춰주시는 배려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