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수요일.
Rabe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7시40분쯤 출발.
--> 이렇게 해뜨기 전까지는 걷기에 무지 좋다.
하지만 안에서나 밖에서나 일찍 일어나는게 힘들어서..--;;
1시간쯤 걷다 보니 동이 트기 시작 한다.
--> 끝없는 이 평원이 좋다. 눈이 시원~ 하다
사방이 지평선인 이 길을 언제 또 걸어 보겠는가.. 한 걸음 한 걸음이 영광스럽다.
지평선 끝을 뚫어져라 쳐다 보며 걷는다. 무념무상으로...
온통 밀밭인데 봄에 왔으면 눈부시게 푸른 빛을 봤을 텐데.. 그것만 좀 아쉽다.
때론 이 밀밭이 황량해 보이기도 했다.
--> 길게 뻗은 이 길을 저 지평선 넘어까지 걷는다.
그럼 또 다른 지평선이 나타나고 또 다른 지평선.... 이렇게 길은 계속 이어 진다.
--> 중간에 들른 마을 Hornillos의 작은 슈퍼. 태극기가 보여 무지 반가웠음..^^
--> 이런곳에서는 햇볕과의 전쟁이다.
자외선 차단제를 생각날때 마다 발랐고..
우리가 서쪽을 향해 가는지라 해가 등 뒤에서 떠서 왼쪽을 지나 정면으로 비춰오기 때문에
이시간엔 왼쪽 얼굴을 버프로 집중적으로 가린다.
물론 우리만.. --;; 서양사람들은 태양 앞에서 당.당.하다... 부럽~
--> San bol 알베르게는 옛날 병원이었다가 알베르게로 바뀐곳으로
수도시설, 화장실도 없기 때문에 중세 순례 여행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란다.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빨간 지붕이 멀리서 보니 이쁘긴 이쁘다.
산볼에서 5km라고 했는데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2시간 가까이 끝없는 평원을 지나도 마을 비슷한거 조차 안보이니 어찌나 막막하던지...
땡볕 아래 그 자리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끝일것 같았다.
다음 날에나 발견될것이고 발견한 사람이 핸드폰이 있을지.. 또 언제 구급차가 올것이며.. 윽.. 상상만해도 허걱이다
넓디 넓은 대평원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볼일도 보고.. 스페인 땅이 넓긴 넓다 --;;
작은 언덕을 넘어서니 드디어 마을이.. 이렇게 움푹한 곳에 마을이 숨어 있네...
암튼 너무 반갑다...^^
--> 앞으로 종종 마주치게 되는 이 아이들.. 20대 초.중반ㅠㅠ
이름은 깜빡했는데 일본여자애는 참 주는거 없이 정이 가는 아이더라구 ^ ^
싹싹한것이.. 귀엽고.. 힘도 세고.. 걸음도 빨러.. ㅋㅋㅋ
위 사진을 봐도 알겠지만 애들은 거의 저녁은 직접해서 먹구 점심은 간단하게 싸온 음식들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식당이나 Bar 에서 먹고... 산티아고까지 거의 그렇더라.
우리도 거의 식당, bar 를 많이 이용했지... 나이가 있어선가?? ㅋㅋ
오늘은 마그리따 피자.. 기대 안했는데 무지 맛있다.^^
--> 나무 아래면 그늘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 몸을 가려줄 그런 그늘은 안보인다..ㅠㅠㅠ
--> 겨우 찾은 가로수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았다. 오렌지도 깍아 먹구.. 신발도 벗어 놓구..
엄마한테 협찬 받은 이 트래킹화.
너무 튀는 색상이라 집에서 어떻게 염색이라도 할까.. 때라도 좀 묻혀볼까 애썼드랬는데...
하얀흙 먼지에 덮혀 검정색이 검정색이 아니고 새 신발이 5년은 된듯하다.
이쪽 사람들이 베이지색 바지를 많이 입더라니..
짙은색 바지를 입고 걷다보면 바지단이 온통 흙먼지에 하얗게 된다. 그래서 자주 빨지 않을 수 없었다.
--> San Anton 수도원 아치.
순례자들이 이 아치를 지나면서 오른쪽 벽에 편지며 일기, 메모들을 많이 남긴다고 하는데 흔적도 없더라구... 아쉽게..
--> 오늘의 목적지 Castrojeriz
다 온것 같았는데 왼쪽으로 훠얼~씬 가서야 알베르게며 식당이 있는 본 마을이 나왔다.
우린 지도상에서 맨 오른쪽으로 들어 온거지.. 아직 갈 길이 머~엄.
--> 왼쪽 갈색문 집은 왠지 가곡 '그 집앞' 이 생각나더라구..
"오가며 그 집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 이 마을엔 3곳의 알베르게가 있는데 위 알베르게와 더불어 두 곳이 꽉 차서 우린 마지막 알베르게에서 묵게 됐다.
--> 9.5유로 짜리 순례자 메뉴. 샐러드에 본 메뉴, 디저트 그리고 와인 한병.
두잔이 주량인데 아까워서 세잔이나 마셨더니 울렁거린다..ㅠㅠ 아~ 술만 늘어서 가는건 아닌가 몰라... --;;
ㅋㅋㅋ 지금 보니 친구 손이 타서 완전 남자 손이 돼버렸네.. ㅋㅋ
-->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
-->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 그리고 호스피탈레로 파코.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4시 반쯤 알베르게 도착.
갈려던 곳이 만원이라 어쩔수 없이 왔는데.. 오래된 곳이라 왠지 찝찝하다.
그렇잖아도 친구가 베드벅에 물린지라 조심스러운데...
부직포 깔고 침낭을 깔았음에도 몸이 근질근질 한것 같다. 화장실겸 샤워실도 많이 아쉽고..ㅠㅠ
그런데 파코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도네이션 알베르게인 이 곳의 아침식사는 감동이다.
까페 콘레체에 비스킷, 버터, 싱싱하지 않은 사과.. 그럼에도 너무나 따뜻한 아침 식사였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생각나기도 했다.
분명 끼니가 될만한건 없었는데 식탁에서 일어나니 배가 불렀다..
이번 여행에서는 한번도 방명록을 남기지 않았는데 이곳에선 축복의 메세지를 남기고 왔다. ㅎㅎ
아침에 파코에게서 카미노의 상징인 화살표 모양 브로치를 선물 받았다.
나만 준줄 알고 엄청 좋아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많이 갖고 있더라구...ㅋㅋㅋ
그래도 기쁘다.. 뭘 받아서라기 보다는 의사소통이 잘 안됨에도..
비.사교적인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걸고 장난치고 호의를 보여줘서..
왠만해서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랑 사진 안 찍는데 나오면서 사진 찍자는 제의에 기쁜맘으로 응했다.
아쉽게 우리 카메라로 찍은건 많이 흔들렸고 파코 카메라에 사진은 얼굴이 안보일 정도로 새까맣게 나왔다.
기념으로 준비해간 한국 전통 문양의 연필이라도 주고 올껄.. 마을을 빠져나오니 생각나는건 뭐냐고.. --;;
오는 내내 마음이 걸렸다... 그저 파코의 영육간 건강을 빌어 본다.